'배짱박사' 이시형(60.고려병원 신경정신과부장)의 건강론은 '윤리학'에 가깝다.
'마음 편히 살아 라. 배짱을 지녀라, 일을
즐겁게 해라, 싫은 일이더라도 의미를 부여해서 해라, 그러면 병에도 걸리 지 않을 것이다. '
누구나 생활 속에서 터득할 수 있는 마음의 지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욕심만큼 쉬 운 일인가.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어긋나버리기 쉬운 게 마음의 흐름이다. 이시형박사는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그러나 실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마음의 건강법'을 설파하고 다니는,
또다른 의미 의 건강 전도사다.
그의 건강 얘기 속에 빠지지 않는 게 하나있다. 바로 命이다. 사람은 명대로 산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얘기인가.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얘기가 '사람은 명대로 산 다'라니.
"사람은 명을 타고납니다. 장수와 건강의 약 80%정도가 명에 달렸다고 봅니다. 나머지 20% 정도를 사람의 힘으로 관리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명을 타고납니다"
그러나 얼핏 운명론에 가깝게 들리는 이 얘기 속에도 이박사의 인생관이자 건강관이
담겨 있다.
命. 이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지극히 의학적인 개념이다. 장수와 건강의 정도를 결정하는 체질적인 조건 같은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체적 조건, 모태의 건강성, 여기에다 환경적 조건들이 어우러져 결정되는 체질적 조건이 명이라는 것이다. "환자를 진료해보면 이 환자가 왜 이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경우가 많거든요. 후천적 생활은 매우 건 실했던 것 같은데 40-50대에 죽을 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 술
담배를 절제없이 하고도 여든 살, 아흔 살까지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자기가 갖고 태어난 명이 있 기 때문입니다. 의사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런 생각이 강해집니다. "
심장병,당뇨병,중풍 등 대부분의 성인병이 거의 전적으로 체질에서 연유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 다. 죽을 병에 걸리면 의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어쩔 수 없으며, 주어진 대로 살 마음가짐을 가져 야 한다는 것이다. 이박사가 드는 단 하나의 물리적인 '건강수칙'은 수칙이랄 것도 없는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1년에 한 번씩 건강진단을 받고 나머지는 체질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죽을 때도 행복하게 죽을
수 있도록 삶을 가꿔 나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얘기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인간이 할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 되는가. 병에 걸린 사람에게 의사도 별로 해줄 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명대로 사느냐 살지 못 하느냐, 이게 인간의 몫이며 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명대로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 이게 인간의 몫
20%의 인간의 몫 중에서 이박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 건강,즉 기쁘게 일하고 정서를 윤택하게 갖는 일이다.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 꽉 짜여진 일상 속에서도 작은
감동을 이끌어낼 줄 아는 마음의 자세, 거기에다 몸을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속에서만 진정한 건강이 싹튼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마음의 건강학'이 그의 건강철학이자 실천적 건강론이다.
"저는 감격을 잘하는 편입니다. 육십 줄에 접어든 지금도 밤 하늘의 별을 보고도 마음이 취하고 환자를 보는 짬짬이 창틈으로 스며 들어오는
한 줄기의 바람에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저녁노을을 보면 한없이 마음이 황홀하고 오늘 하루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는 이런 일상 속의 감격을 스스로 만들어 메마른 정서를 윤택하게 한다. 또 황폐해지기 쉬운 도 시적 삶 속에서도 낭만을 즐기려 노력한다.
이박사는 요즘도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점심시간에 동 료들과 병원 건너편에 있는 덕수궁 돌담길로 향한다. 1km 정도의 산책길을 담소하며 걸어서 근
처 호텔의 일식집에 들어가 '돈을 좀 쓴다'. 이처럼 인생의 묘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라면 이박사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저희 병원 환자 중에 애인하고 포옹을 하다가 남자가 너무 세게 껴안는 바람에 갈비뼈 두 대에 금이 간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병원에는 왔지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세상 만사가 모두 그렇습니다. 일은 곧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입 니다.
" 이 박사의 일생은 이런 독특한 '건강이론'을 몸으로 실천해 온 나날들이었다. 어렸을 적의 가난, 정권의 학원탄압에 정면으로 맞섰다가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등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손상 당하지 않기 위해 무척 애쓴 세월이었다.
이박사는 1934년 대구에서 훈장을 하던 아버지의 6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관심은 오직 놀고 쏘다니는 데만 있었다고
한다. 시험 때가 되면 낙제를 면하기 위해 억지공부를 한 게 고작이었다. 학교도 친구들과 어울려 낄낄거리는 재미로 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꿈이고 이상이랄 것도 없었다. 집안 형편도 딱하기만 해서 한 끼를 때우는 데 급급 했다. 다행이 시골 선비 집안이라는 묘한 긍지와 분위기가 그를
상급학교로 밀어 올려 주었다.
그가 의과대학을 택한 것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6. 25전쟁 막바지여서 의과대학에 입학하면 징병 보류가 되는
상황이었고,의사가 되면 지긋지긋한 가난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공군 군의관을 마친 뒤 그는 6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예일大에서는 한 달 장학금
3백달러로 아파트 임대료, 정신분석료 2백15달러를 제외하고 85달러로 생활을 해야 하는 극도의 어려움도 이겨냈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돌아온 고국은 그에게 즐거움만을 주지는 않았다. 모교인 경북대 의대 에서 정열적으로 가르쳤지만, '미국 바람'이 든
대구생활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사회부조리도 그를 괴롭혔다. 그가 대구를 떠나기로 작정한 결정적 동기는 유신반대 학생데모였다. 대학당국이
데모와 관련된 의대생23명을 무더기로 제적 처분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학생과장이었던 그는 대학당국에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깡패'같은 행패를
부렸다. 결국 그 는 대구를 떠났다.
이제 서울 고려병원에 자리잡은
지 17년. '매스컴을 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여기 저기 뛰어 다녔다. 병원장도 했다. 만 예순이 된 지금, 쉴 나이도 됐지만 생활방식을
젊었을 때 그대로다. 이박사는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도 권태를 모르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15시간씩 일한다. 병원진료, 경향신문과 대구 영남일보에 2주일에 한 번씩 쓰는 칼럼,1주일에 한 번씩 KBS 2TV
'TV교육위원회'출연, 2개 대학의 강의 등으로 눈코 뜰새 없이 지낸다. 거기다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써 지금까지 단행본 18권을
출간했다. 그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시작된다. 가볍게 몸을 풀고 바로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정신이 맑아 원 고 쓰기가 가장 좋은 시간이다.
요즘은 조금 적게 쓰는 편이지만 한 달에 2백자 원고지 2백장은 족치 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그는 한 번도 일하기 싫다고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천성적으로 타고났다기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삶 자체가 됐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즐기면서 일을 하면 절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박사는 요즘 모임에 나가면 동년배들에 비해 열 살은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머 리만 조금 희끗희끗할 뿐 피부는 아직 팽팽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중추 신경(머리)을 꾸준히 쓰기 때문에 젊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박사는 아침에 일어나 문 앞에 배달돼 있는 신문과 우유에 고마움을 느끼고 택시 운전사,청 소부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그는 이런 상식적인
데서 건강한 삶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 한다. "물론 종교적 사랑의 마음을 배우지는 못했지요. 나에게도 원수 같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을 보면 때려죽이고 싶지요. 그러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은 있 지요"
상식적인 데서 건강한 삶의 길을 찾아야 할 것
이박사는 체질적으로 건강한 몸을 지니고 태어났다. 스포트라면
못하는 게 없고 힘도 꽤 쓰는 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감기몸살만 몇 차례 앓았을 뿐 큰 병치레는 한 번도 없었다. 그 는 몸살이 걸려도
'아,내가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몸을 좀 쉬라는 것이구나'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아직까지 떨쳐버리지 못한 '편견'이 하나 있다. 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술을 먹고 가끔 몸가짐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심정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삼촌 두 분이 독립운동으로 옥고
를 치르는 바람에 부친이 술주정을 많이 했고, 그것이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았던 기억 때문이다.
이런 기억 탓에 그는 맥주 두 잔 이상을 마셔본 적이 없다. 한 잔 정도면 기분이 적당히 좋고 두 잔이면 '이 이상은 안돼'라고 자제한다고
한다. 담배도 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줄담배였지 만 직업적 양심 때문에 끊었다고 한다. 60년 예일大에서 임상을 할 때의 일이다.
마약중독자를 치 료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중독자가 이박사에게 "당신도 치료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었다. 마약과 담배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었다. "아차,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되겠구 나. " 이박사는 그 날로 담배를 끊어버렸다.
이박사는 길을 걸으면서도 사람들의 몸가짐,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세심히 관찰한다. 왜 사람들은 줄을 서면 두 줄, 세 줄이 돼버릴까. 왜
사람들은 택시운전사와 1백원 가지고 싸울까. 저기 팔장 을 끼고 가는 남산의 연인들은 정말 행복할까. 혹시 불안감이 더 크지 않을까. 그 모든게
정신과 의사에겐 좋은 공부거리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써 온 글들의 대부분은 이런 관찰을 정리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은 압박감 을 덜 느낄까.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가 쓰는 글의 주제는 곧 그의 건 강을 유지해 주는 비결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은
굉 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느냐 보다 스트레스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양은 대체로 일을 받아들이 는 사람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병이 생기기도 하고 낫기도 하는 것입니다. "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되 열심히, 해야 할 일은 꼭하면서 신나게 삽시다. "너무나 평범한, 그러 나 실천만 하면 그 이상은 없을 듯한
그의 건강학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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