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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박명(佳人薄命) // 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기박함.
《出典》'蘇軾'의 詩
아래 시의 작자 소식(蘇軾:1036-1101)이 항주, 양주 등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나이 삼십이 이미 넘었다는 예쁜
여승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웠을 소녀시절을 생각하며 미인은 역사적으로 운명이 기박하였음을 시로 쓴 데서 전하여졌음.
두 볼은 엉긴 우유와 같고 머리는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맣고,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난다. 본디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지으니,입술연지는 천연의 바탕을 더럽힌다 하여 바르지 않았네.오나라 사투리의 애교 있는 소리는 어린아이처럼 애띠고,무한한 사이의 근심 다 알 수
없네.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문을 닫고 봄이 다하니 버들꽃 떨어지네.
雙頰凝 髮抹漆 / 眼光入廉珠的白樂 / 故將白練作仙衣 / 不許紅膏汗天質 /
吳音嬌軟帶兒癡 / 無限間愁總未知 / 自古佳人多命薄 / 閉門春盡楊花落
이 시는 1086년부터 8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은 어린 승려를 노래한 七言律詩로 되어 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뒤집혀도 모를 만한 미인. 《出典》'漢書' 李夫人傳
'傾國'이 '傾城'과 아울러 美人을 일컫는 말로 쓰여지게 된 것은 이연년(李延年)의 다음과 같은 詩에서 유래한다.
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 세상을 끊고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기울이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기울게 하네. /
어찌 성을 기울이고 나라를 기울임을 알지 못하랴. /아름다운 사람은 두 번 얻기 어렵네. 北方有佳人 / 絶世而獨立 /
一顧傾人城 / 再顧傾人國 / 寧不知傾城與傾國 / 佳人難再得
무제는 곧 그녀를 불러들여 보니 더없이 예뻤고 춤도 능숙해 그녀에게 완전히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 여인이 이부인(李夫人)이다.
傾國이란 말은 李白의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의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과 항우에게서 자기
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漢高祖가 [이는 천하의 변사이다. 그가 있는 곳에 나라를 기울이게 할 수 있다.]고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곡학아세(曲學阿世) //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함.《出典》'史記' 儒林傳
한(漢)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는 즉위하자 천하에 널리 어진 선비를 찾다가 산동(山東)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시인을 등용하기로 했다.그는 당시 90세의 고령이었으나 직언을 잘하는 대쪽 같은 선비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사이비(似而非)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비방(中傷誹謗)하는 상소를 올려 그의 등용을 극력 반대하였으나 경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당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소장(少壯) 학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산동 사람으로 이름을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늙은이라고 깔보고 무시했지만 원고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학문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서 속설(俗說)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사설(私設)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일세. 자네는 다행히 젊은 데다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란 말을
들었네. 그러니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 바라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 원고생의 말이 끝나자 공손홍은 몸둘 바를 몰랐다. 절조를 굽히지 않는 고매한 인격과
학식이 높은 원고생과 같은 눈앞의 태산북두(泰山北斗)를 알아 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공손홍은 당장 지난날의 무례를 사과하고
원고생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固之徵也 薛人公孫弘亦徵 側目而視固 固曰 公孫子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유사어】어용학자(御用學者)
관포지교(管鮑之交) // 중국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같은 친교라는 뜻으로, 친구 사이의 다정한 교제를
일컬음. 《出典》'史記' 列子
춘추시대 초엽, 제(齊)나라에 관중(管仲 : ?∼B.C 645)과 포숙아(鮑叔牙)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사이였다. 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 : 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제(齊)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옵소서."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重用)하고 정사를 맡겼다
한다.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었으나 그는 나를 욕심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老母)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
【유사어】문경지교(刎頸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단금지교(斷金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교칠지교(膠漆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반의어】시도지교(市道之交)
남가일몽(南柯一夢) //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부귀 영화.《出典》'南柯記' 異聞集
당(唐)나라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80-804)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淳于 )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어디서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南柯) 태수를 제수(除授)받고 부임했다. 남가군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 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宰相)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태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遷都)해야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동의어】남가지몽(南柯之夢), 남가몽(南柯夢), 괴몽(槐夢) 【유사어】한단지몽(邯鄲之夢), 무산지몽(巫山之夢),
일장춘몽(一場春夢)
난형난제(難兄難弟) //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두 사물의 낫고 못함을 분간하기 어려움의 비유. 《出典》'世說新語' 德行篇
"양상군자(梁上君子)"로 유명한 후한(後漢)의 진태구(陳太丘)가 낭능후(郎陵候)를 지낸 순숙(筍淑)의 집을 아들 진기(陳紀 : 元方)와
진심(陳諶 : 季方), 진군(陳群 : 長方)을 데리고 찾아갔다. 순숙은 빈약하고 검소하여 노복도 없었다. 그들이 도착하자 순숙은 어린 막내만
방에 두고 나머지 일곱 명은 전부 심부름을 시켰다. 이 때 태사(太史)가 임금께 아뢰기를, "덕성(德星)이 동쪽 순숙의 집에 다 모여
있다."라고 했다.
한번은, 진식(陳太丘)이 친구와 어디를 가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워낙 늦어 먼저 출발했는데 늦게 온 친구가 진식을 욕하자 그 때
진기(陳紀 : 元方)는 이렇게 말했다. "손님께서 아버지와 정오에 만나기로 약속하시고는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 이제 오셨으니 손님과 제
아버지 중 누가 신의를 저버린 것입니까? 그리고 자식 앞에서 그 아버지를 욕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까?" 진식(陳太丘)을
찾아왔던 사람은 친구의 어린 아들에게 책망을 당하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내 사과하려 했으나 어린 진기(陳紀 : 元方)는 이미 대문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또 한번은 사촌간인 진기(陳紀 : 元方)의 아들과 진심(陳諶 : 季方)의 아들 사이에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결말이 나지 않자 할아버지인 진식(陳太丘)에게 와서 판정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때 진식(陳太丘)은, "원방(元方)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季方)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말했다 한다.
대기만성(大器晩成) // 크게 될 사람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 《出典》'三國志' 魏志 / '後漢書' / 老子
⑴《三國志》'魏志'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하고 일가 친척들로부터도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大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大器晩成'하는 그런 형이야. 두고 보라구.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⑵《後漢書》에 보면,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 25-57)때 마원(馬援)이란 명장이 있었다. 그는 변방의 관리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이다. 마원이 생전 처음 지방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형인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이른바 '大器晩成'형이야. 솜씨 좋은 대목이 산에서 막 베어 낸 거친 원목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제목으로 다듬어 내듯이 너도
네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自重)하라."
⑶《老子》에도,'큰 네모(四角)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大方無隔 大器晩成)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동의어】대기난성(大器難成) 【유사어】대재만성(大才晩成)
맥수지탄(麥秀之歎) // 고국의 멸망을 한탄함.《出典》'史記' / '詩經'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이 음락(淫樂)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諫)한 신하 중 삼인(三人)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諫)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箕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 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 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發)은 은왕조(殷王朝)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封)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 교활한 저 철부지[紂王]가 /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麥秀漸漸兮 / 禾黍油油兮 / 彼狡童兮 / 不與我好兮
【동의어】맥수서유(麥秀黍油), 맥수지시(麥秀之詩)
사면초가(四面楚歌) // 사면이 모두 적에게 포위된
경우와 고립된 경우를 이르는 말. 《出典》'史記' 項羽本紀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 : 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 : 섬서성(陝西省)]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 진평(陣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 : 안휘성(安徽省)]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게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가사 격감한 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四面楚歌]'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초나라
군사들은 전의를 잃고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을 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작전이 주효(主效)했던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서 외치듯 말했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들이 많은가?" 이미 끝장이라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酒宴))을 베풀고는 사랑하는 虞美人이 '四面楚歌'의 애절한 노래를
부르자, 비분강개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건만 / 때는 불리하고 추( )도 나아가지 않누나. / 추가 가지 않으니 / 어찌하면 좋은가.
/ 우(虞)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力拔山兮氣蓋世 / 時不利兮 不逝 / 不逝兮 可奈何 / 虞兮虞兮奈若何
【동의어】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수주대토(守株待兎) // 변통할 줄 모르고 어리석게
지키기만 함.《出典》'韓非子'
송(宋)나라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토끼 한 마리를 공짜로 얻은 농부는 농사일보다 토끼를 잡으면 더 수지가 맞겠다고 생각하고는 농사일은 집어치우고 매일
밭두둑에 앉아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기만 기다렸다.[守株待兎] 그러나 토끼는 그곳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농부 자신은
송(宋)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밭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농사를 망친 것은 물론이다.
宋人 有耕田者 田中 有株 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 而守株 冀復得 不可不得 而身爲宋國笑.
한비자(韓非子)는 요순(堯舜)을 이상으로 하는 왕도(王道) 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대의 변천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복고주의(復古主義)는 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낡은 관습을 지키며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줄 모르는 사상 또는 사람에게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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